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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1월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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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하기 그지 없는 일요일 아침, 전 날 겪던 사소한 탈이 잠과 함께 씻어 내려가며 유독 개운하게 정신이 들었다. 정신이 들고 처음 느낀 인식은 닫힌 방문 너머 익숙하지만 의외의 소리들과 인기척들이었다. 친한 이웃 가족의 이삿날이라 짐을 나르는 중 찬 바람을 피할 겸, 마지막 인사 겸 찾아온 것이다. 이웃 동생들과는 어릴 적 부터 오래 봐오며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으나, 군가족의 숙명과도 같은 이사를 자주 겪으며 지냈던 사이라 헤어짐의 아쉬움 같은 건 사라진지 오래였다. 물론 다양한 연락의 방법이 있기 때문인지, 최근 유사한 진로와 꿈을 나누며 가까워졌기 때문인지, 결국에는 더욱 가깝게 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동생들과 같이 부담없이 맛 좋은 맥모닝을 먹으며 TV를 보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디자인을 공부 중인 한 동생과는 최근 로고 제작 의뢰를 부탁하기도 했고, 웹-개발 쪽으로도 정보를 나누며 자주 연락하며 지내는 사이다. 최신 트렌드 얘기를 나누던 중, 전날의 탈로 밀린 할 일에 조바심을 느끼며 잠시 방에 들어가 하루 숙제 계획을 정리하고 있었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동생들의 잡담과 TV소리, 부엌에서는 어머님들간의 사담과 커피잔 소리가 들리던 중, 어머니의 웃음과도 같은 큰 "헉" 소리가 나셨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어머니께선 가끔 과한 리액션을 하신다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그 순간의 리액션은 달랐다. 약간의 이상함과 불안감을 가지고 다과상에 있던 사과를 먹는 척하며 어머니를 살피러 나갔다. 평화롭고 정겹던 일요일 아침의 모습과는 상반되게, 어머니는 화사한 햇살 가운데 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신 채 전화를 붙잡고 울고 계셨다. 옆에 계시던 이모(워낙 오래 전부터 자주 뵙던 해병대 가족들 사이끼리 편히 부른다.)도 상당히 놀라신 모습이었다. 전화를 받던 어머니는 한참을 끊지 않고 우시더니, 또 다른 이모의 부고를 전했다.

어릴 적 부터 뵙던 이모였다. 내 동생이랑 동갑인 아들이 있는 3 가족이 있는데, 우리 집 까지 포함한 4 가족은 끈끈했다. 같은 00년생 아들들을 뒀다는 점, 아버지들간의 성격이 비슷한 점, 임관 초기 비슷한 발령지에서 생활했다는 점 등 이런저런 이유를 바탕으로 가까웠던 가족들이었다. 그런 가족 구성원들 중 한분께서 오늘 아침 별세하셨다. 성인이 된 뒤로는 자주 뵙지 못했던 어른이지만, 예상치 못한 시기에 듣게 된 부고 소식이라 나 또한 어머니와 같이 화들짝 놀랬다. 새로운 지역으로의 이사를 준비하는 설레임과 약간의 초조함을 달래던 이웃들 또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른 하던 분위기는 갑작스레 찾아온 소식이 어수선한 분위기로 끌고 갔다. 그리고 그렇게, 정든 이웃과는 잠시 헤어지게 되었다.

갑작스런 지인의 부고는 지인이 손윗사람 혹은 손아랫사람 임을 불문하고 잠깐이지만 순간을 멈춘다. 나에게 그 분은 다른 분들께서 가지는 의미에 비해 작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인간의 죽음 자체가 작은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비교할 대상인 것 또한 더더욱 아니다. 소식을 듣고 예전에 받던 많은 들이 생각났다. 같은 해병대 동기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정겹게 대해 주시고 챙겨주셨다. 어릴 적 피섞이지 않은 어른 분들께 받던 많은 사랑과 정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무의식 속에 그분들의 정이 베여,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정을 나누고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내가 인지 하지 못한 채, 인정 하지 못한 채 받는 은혜가 많다. 무작정 "이건 나다"라고 치부하는 모든 것들도 사실 처음은 남에게서 온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지금 나의 인연들 또한 소중하다. 왜냐하면, 그들 이 곧, 이기 때문이다.

비대면으로 사람들과 거리가 생긴 요즘, 다시 한번 인간과 관계에 대한 고찰과 어린 시절 받던 사랑과 정을 상기 시켜 주신 이모께 감사와 추모를 올린다.